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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오픈마이크] 중학생 아들 주검에 "택배왔다"…"왜곡·모욕 끝나지 않아"

입력 2020-05-23 19:46 수정 2020-05-25 13:15

[앵커]

증거와 증언이 넘쳐나도 광주에는 '왜곡'이 잔인하게도 들러붙어 있습니다. 진실이 있는 한 모든 주장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순 없을 텐데 광주를 향한 왜곡의 목소리는 외려 시간이 갈수록 당당해지고 있습니다.

그 왜곡과 조롱, 모욕이 피해자들 삶에 어떠한 얼룩으로 남았는지 오픈마이크에서 담아왔습니다.

[기자]

이 사진은 엄마가 15살 아들을 땅에 묻는 날 찍혔습니다.

도청에 나가 보겠다더니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.

그 아들에게 입혀 줄 깨끗한 수의마저 구할 수 없어 겨울 교복을 입히고, 비닐에 싼 한스러운 날이었습니다.

[김문희/고 김완봉 군 동생 : 그 냄새부터 시작해서 오빠 모습을 봤을 때 있을 수가 없어서 밖에 나와 다 토해 버렸거든요. 볼 수가 없더라고요. 너무 무섭고 무서웠어요.]

사무치는 그 날이 기록된 이 사진에 33년 뒤 누군가는 택배 운송장을 합성했습니다.

총탄에 떠난 아들을 택배로, 아들을 잃은 엄마를 마치 택배를 기다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.

[김문희/고 김완봉 군 동생 : 너무 충격이었어요. 아마 (엄마가 살아 계셨다면) 쓰러지셨을 거예요. 아들을 잃고 통곡하고 있는 이 사진을 가지고,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.]

간호사가 꿈이던 금희는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헌혈을 하러 갔다가 헌혈차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.

[박금숙/고 박금희 양 언니 :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메리야스 벗어서 (피) 닦아 주고… (시신이) 부어가지고 관에 들어가질 않아. 관에 들어가질 않아서 억지로 이렇게 했어, 억지로…]

그날 엄마의 곁을 지켜준 이모를 누군가는 '북한군 광수'로 둔갑시켰습니다.

[박금숙/고 박금희 양 언니 : 도청에도 엄마랑 같이 다니다가 사진들이 찍혔나 봐요. 광수 몇 해서 사진 찍혀서. 언제 (방송국에서) 전화가 왔어. 그런 거 아니냐. 대꾸도 하기 싫어서 끊어 버렸어요.]

이곳 광주 법원에서 전두환 씨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.

헬기사격을 봤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입니다.

전두환 씨가 고인을 '파렴치한 거짓말쟁이'라고 하면서 소송을 냈습니다.

고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기보단 전두환 씨를 법정에 세워 헬기사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가리기 위한 거였습니다.

[조영대/고 조비오 신부 조카 :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걸 입증해 내는 차원에서… 개인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떠들썩하게 재판을 걸 수 있었겠는가 싶어요.]

계속되는 법정 다툼에 건강도 상했습니다.

[조영대/고 조비오 신부 조카 : 계속 그 거짓말을, 궤변을 듣고 있노라면요. 심지어 자기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그러는데… 그런 사람들 앞에 두고 침묵하고 앉아 있으려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. 그 재판에 있는데 안 아프면 이상하죠.]

독일처럼 유대인 학살 '홀로코스트 범죄'를 부인하면 처벌하는 법이 있었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.

[조영대/고 조비오 신부 조카 : 홀로코스트법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게 나중에 살짝 부과되는 정도로 가지 않았을까.]

40년이 지났어도 광주엔 잔인하게도 '왜곡'이 들러붙어 있습니다.

[김문희/고 김완봉 군 동생 : 국가에서도 인정을 했잖아요. 민주화운동에 대해서. 폭동이 아니다, 북한군이 아니다… 40년이 지나서까지도 지금도 이렇게 하는 부분에 대해선 국가에서 그건 막아 줘야 된다.]

[조영대/고 조비오 신부 조카 : 민주주의를 가장 박해했던 사람들이 지금 민주주의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. 옛날 같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냥 잡아가서…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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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녕하세요. 한민용 기자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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